[유석재의 돌발史전] 나는 이제 더 이상 ‘마오’를 존경하지 않는다
[유석재의 돌발史전] 나는 이제 더 이상 ‘마오’를 존경하지 않는다
Blog Article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의 마오쩌둥 찬양 포스터.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전면승리 만세!'라 쓰여 있다. 도대체 누가 승리했는가?
일반적인 신문기사라면야 그럴 일이 거의 없겠습니다만, 이 ‘돌발史전’은 인터넷상에만 연재되는 뉴스레터 기사이기 때문에 종종 제 개인적인 얘기가 등장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뽀빠이 이상용이 1980년에 쓴 유머 서적을 소개하던 중 마오쩌둥(毛澤東)에 관련된 농담이 나오는 부분에서, 저는 과거에 이 농담을 떠올리고 불편한 적이 있었다는 언급을 했습니다. 그러자 독자 한 분이 댓글에 이런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중국 국민들을 인민으로 만든 모택동에 대한 평가가 적절한데? 뭐가 아쉬운가?nh농협캐피탈주부대출
기자는?’
기사의 해당 부분을 다시 보면,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중요한 부분을 굵은 글씨로 강조해 봅니다).
<제가 대학생이 된 뒤 이 유머를 떠올리며 ‘그래도 마오는 위대한 인물인데 이건 너무 비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네, 앞의 문장은 과거형입니다.>
‘앞의 문장은 과거형입니다’채무자회생및파산
라고 쓴 것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11월 16일 조선일보 ‘BOOK’ 섹션에 제가 썼던 특집 기사가 있습니다. 출간 50주년을 맞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판하며, ‘중국 문화대혁명의 진상을 보여주는 책들’을 지면에 함께 배치했습니다.
DTI LTV 완화
조선일보 2024년 11월 16일자 'BOOKS' 지면.
그런데 신문에서 한번에 몰아 썼던 이 두 기사가 인터넷에선 각각 다른 기사로 분리돼 올라가는 바람에 강도가 약해진 감이 있었습니다. 그 두 기사를 여기에 다시 한꺼번에 실어 보겠습니다.
현대카드연체율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80년대 운동권의 성전 ‘전환시대의 논리’… 50년 이어진 오류와 왜곡
리영희, 무지와 편향으로 ‘文革’ 찬양
1974년 출간된 ‘전환시대의 논리’
2024.11.16
길잡이
언론인이자 학자인 리영희(1929~2010) 전 한양대 교수가 1974년 낸 ‘전환시대의 논리’는 올해 출간 50년을 맞았다. ‘지적 다이너마이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1970~80년대 학생 운동권의 의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중국 공산주의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 책을 학자금대출서류
탐독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50년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서점에서 팔리고 있는 이 책은 시대착오적인 낡은 역사관과 사실에 대한 왜곡과 오류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달 ‘전환시대의 논리’ 50주년 학술행사가 열릴 정도로 일부에서는 이 책의 의미를 강조한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점은 ‘중국 현대사 최악신한캐피탈전세보증금
의 참사’라 불리는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문혁)을 일방적으로 찬양한 책 내용이다. 문혁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친위 쿠데타였으며 대규모 정적 탄압과 숙청, 폭력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는데도 아직도 일부에선 이 책에 입각해 억지 주장을 펴기도 한다. 문혁 기간 중국에서는 공식 사망자 170만명, 추정 사망자 2000만명이 발생했고 1억13학자금대출 생활비대출
00만명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문혁은 전국적인 문화 파괴 운동이 벌어졌던 내란(內亂)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리영희는 문혁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에 집필한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전혀 다른 논지를 펼친다. 그는 문혁에 대해 ‘인류 사상 초유의 일대 실험’(86쪽, 이하 2006년 2판 기준)이라고 소개한 뒤 ‘인간을 개조하고 평등한 인기업은행 마이너스통장 발급대상
간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 구조를 창조하려는 것’(96쪽)이라는 마오의 말을 인용하며 높이 평가했다.
이어 ‘세상에 하나의 경이로 비치고 있는 현대 중국의 건설’(173쪽), ‘홍위병의 공개 비판은 서구식 민주주의와도 일치하며 중국에선 1인 독재를 생각하기 어렵다’(182쪽)고 했다. 심지어 문혁 이후 실각하고 처벌받은 악명 높은 ‘4인방’국민은행 파업
에 대해서도 ‘유능한 인재로서 향후 중국의 지도부가 될 것’이라는 잘못된 예언까지 했다. 운동권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고정관념을 철거하고 반공 우상을 깨부쉈다’고 평가하는 리영희 중국론의 실체는 사실 왜곡이었다.
책의 논리는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이 서구 문명과 다른 독자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마오에 대한 개인 숭배가 정당하다는 사대주의적 입장으로까지 나아간다. ‘중국 근대화 투쟁의 사상적 기조는 서구 문명의 부정과 극복’(154쪽)이라 쓰면서 ‘성왕(聖王)의 이상과 그 밑에서의 평화와 대동(大同) 사상은 모택동 숭배 현상을 이해할 근거가 돼 준다’(156쪽)고까지 적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굴종적 태도는 이 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리영희는 문혁의 실상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반미주의·친중주의·사회주의에 근거해 편향되고 왜곡된 정치 서술을 했다”며 “대중을 동원한 권력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는 문혁의 본질에 대해선 철저히 눈을 감았다”고 말했다. 당시 리영희의 시각이 독창적인 것도 아니었다. 한상일 국민대 명예교수는 “당시 일본 좌파 잡지 ‘세카이(世界)’ 등이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중국과 북한을 ‘이상사회’로 긍정적으로 본 논지가 리영희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했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의 홍위병들.
中 문화대혁명의 진상을 보여주는 책들
2024.11.16
‘전환시대의 논리’가 보여준 중국 문화대혁명 찬양이라는 시대착오적 시각을 교정해 줄 책은 많이 출간돼 있다. ‘친위 쿠데타, 내란, 대규모 파괴 운동’이라는 문혁의 실체에 대해 이미 역사적인 평가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중국 인민의 역사
프랑크 디쾨터 지음 |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문화대혁명이 진행된 10년 동안 150만명에서 20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끝없이 계속된 비난과 허위 자백, 투쟁 대회, 백해 운동 등으로 훨씬 많은 사람의 삶이 파괴됐다.” 네덜란드 출신의 중국 현대사학자 프랑크 디쾨터가 쓴 ‘인민 3부작’의 마지막 책인 ‘문화대혁명: 중국 인민의 역사’는 문혁에 대해 “10년에 걸친 혼란과 뿌리 깊은 공포로 역사에 영원한 발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하며 ‘혁명’의 광풍 속에서 중국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황폐화된 실상을 자세히 파헤친다.
이 책에서 묘사된 문혁의 실상은 지옥도에 가깝다. 십대 홍위병들이 ‘반동’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길거리로 끌고 나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인민의 적” “마오 주석께 사죄하라”고 고함치며 괴롭히는 것 정도는 약과였다. 1966년 내몽골에서는 반역자로 몰아 붙인 사람들의 혓바닥을 잡아 뽑거나 펜치로 이빨을 뽑고 몸을 불로 지지는 일도 있었다. 1968년 우한에선 군중이 인육을 요리해 먹은 사실이 알려지자 혁명위원회 책임자가 “식인 행위라고? 우리가 먹은 것은 지주의 살이었다!”고 항변했다.
슬픈 중국(전 3권)
송재윤 지음 | 까치
1948년 이후의 중국 현대사를 새롭게 통찰한 송재윤 교수의 ‘슬픈 중국’은 문혁을 ‘대혁명’이라 하는 것은 미화일 뿐이며 ‘문화대반란’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라고 말한다. 문혁이란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가리고 정적을 제거하고자 한 정치 공작이었다는 것이다. 마오는 청소년의 가슴에 불을 질러 당내의 반대 세력을 소탕하는 희대의 대반란을 기획했고, 군대가 개입하면서 군중 대 군중의 대전(大戰)으로 치달았다. 그 후 전개된 문혁이란 인민 재판, 집단 린치, 인격 살해, 무장 투쟁, 대민 테러로 점철된 동란이었다는 것이다.
마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전 2권)
장융·존 핼리데이 지음 | 황의방 외 옮김 | 까치
‘대륙의 딸’을 쓴 장융과 영국 학자 존 핼리데이가 함께 쓴 ‘마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은 마오쩌둥의 지인 480명의 인터뷰와 미공개 자료들을 통해 문혁의 주인공 마오쩌둥의 이면을 서술한 책이다. 마오를 ‘철저한 권력 지상주의자’로 평가한 저자들은 대약진운동과 문혁을 비롯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거대한 운동들은 마오 개인의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문혁 시기에 마오는 정적들의 고문 장면을 촬영하게 하고 그 필름을 별장에서 감상했다는 등 대중은 통 알 수 없었던 많은 일화도 소개했다.
모택동의 사생활(전 3권)
리즈수이 지음 | 손풍삼 옮김 | 고려원
‘모택동의 사생활’은 1995년 번역본이 출간돼 국내 지식 사회에 충격을 안겨 준 책이다. 22년 동안 마오의 주치의로서 그를 가까이서 지켜 본 리즈수이(李志綏)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통해 마오의 은밀한 여성 편력과 권력 암투를 폭로했다. 배후 조종을 통해 문혁을 일으킨 마오는 “내 생각에 이번 일로 1000명 정도는 희생될 것 같지만 나는 천하 대란을 좋아한다”고 털어놨다. 측근이었으며 훗날 중국을 탈출하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린뱌오(林彪)를 두고서는 “저 자는 내 폐가 썩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의심하는 불안증에도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택동 비록(전 2권)
산케이신문 특별취재반 지음 |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문혁 시기의 정치적 격변에 대한 논픽션으로는 일본 산케이신문 특별취재반의 ‘모택동 비록’이 있다. 책은 숙청당한 전 국가 주석 류샤오치(劉少奇)의 말로를 자세히 묘사했다. 류는 감금당한 채 병이 들었는데, 의사는 욕을 하며 청진기로 때렸고 간호사는 주사기로 몸을 마구 찔러 댔다. 그는 콘크리트 창고 안에서 폐렴으로 죽었고 시신은 비밀리에 화장됐다.
왕단의 중국현대사
왕단 지음 | 송인재 옮김 | 동아시아
중국인들은 문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왕단의 중국현대사’(동아시아)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였던 왕단(王丹)의 대학 강의를 정리한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문혁이란 마오 개인의 권력욕에 혁명의 외피를 입혀 장엄하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당 내 관료주의와 부패에 대해 불만을 지니고 있던 군중을 이용해 초기엔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결국 중국의 경제 자산을 소진시켰고, 결정적으로 인성의 타락이라는 부정적인 영향을 중국 사회에 남겼다고 고백했다.
==========
리영희처럼 문혁을 찬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의 저는, 그래도 마오가 최소한 ‘수천년 중국사상 처음으로 인민이 주인인 나라를 건설한 인물’로는 평가해야 한다고 잠시나마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IMF 사태 무렵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민의 나라를 만든 것인가, 아니면 인민을 이용해 자신의 종신 집권을 끝내 이뤄낸 인물인 것인가. 그렇다면 전제군주인 황제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20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건설하는 일을 두고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중국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얼빈에 왜 안중근 동상을 세운단 말인가? 당신들 한국인은 서울에 마오 동상을 세운다면 황당해하지 않겠는가?”
저는 그 말을 전한 후배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얼빈 사람들에게 안중근은 ‘자신들을 대신해서 제국주의와 투쟁한 인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에게 마오쩌둥은 누구란 말인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무력으로 한반도를 침략하고 서울을 점령한 인물’이 아닌가.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최소한 배우려는 자세라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마오’가 창출한 대륙의 지옥도 속에서 제가 유독 고통스러웠던 부분은 앞의 기사 중 ‘모택동 비록’에 나오는 류샤오치에 대한 박해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든, 늙고 병든 자신의 육체를 마지막으로 의탁할 사람들은 가족이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의사가 청진기로 때리고 간호사가 주사로 찔렀다… 참으로 ‘마오’는 세상에 다시 없을 진정한 지옥도를 만들어낸 인물인 것 같습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설명해드립니다.
돌발史전 구독하기(https://www.chosun.com/tag/your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