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공간과 도시] 콜럼버스와 달리, 中 정화는 왜 ‘빈손’이었나

[유현준의 공간과 도시] 콜럼버스와 달리, 中 정화는 왜 ‘빈손’이었나

[유현준의 공간과 도시] 콜럼버스와 달리, 中 정화는 왜 ‘빈손’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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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중국 명나라의 정화와 이탈리아 제노바의 콜럼버스를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정화는 1405년에 해외 원정을 시작했고, 콜럼버스는 그보다 87년 후인 1492년에 탐험을 시작했다. 정화는 300척의 배를 가지고 원정을 진행했으나, 콜럼버스는 3척의 배를 가지고 탐험을 시작했다. 선단의 규모에서 100배 차이다. 정화는 2만7000명의 선원을, 콜럼버스는 90명의 선원을 가지고 탐험을 했다. 선원 규모에서는 300배 차이가 난다. 정화는 120미터 길이 2000톤 규모의 대형 선박을 가지고, 콜럼버스는 19미터 길이의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모험했다. 규모 면에서 정화의 함대가 콜럼버스의 함대를 압도한다. 대기업과 벤처한국여행업협회
기업의 차이 정도다. 그런데도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여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지만, 정화는 30년 가까이 7차례의 탐험으로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까지 도달하였음에도 이후 역사에는 큰 영향을 끼친 바가 없다. 왜 그런 차이가 났을까? 가장 큰 이유는 콜럼버스는 망망대해 바다를 향해서 나갔고, 정화는 해안선을 따라서 항해했다내생에첫주택자금대출
는 점이다. 콜럼버스는 인도·중국·일본으로 갈 수 있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려는 목적으로 바다를 건넜지만, 정화는 그저 옆에 있는 나라를 조공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안전하게 해안선을 따라서 항해하였다. 그런 이유로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정화는 대단한 발견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정화는 바다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쌍용자동차 추석
까? 둘은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다. 두 사람 모두 해안선에서 배를 띄웠다. 하지만 정화는 해안선이 땅의 끝이라고 생각했고, 콜럼버스는 해안선은 새로운 바다라는 공간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정화는 해안선을 새로운 시작으로 보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콜럼버스는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사업직군
자신은 변두리에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 인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었다. 온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을 때는 과학 발달이 없었다. 하지만 훗날 태양이 중심이고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류는 과학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중국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중국은 자신이 가운데, 즉농협 공인인증센터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태에서는 멀리 있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먼 곳을 탐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국은 이미 유럽에서 많은 상인이 찾아와서 물건을 사 가는 경험을 하였다. 하지만 동쪽으로 항해해서 자신이 직접 유럽에 갈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자신이 중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쪽으로 항해를 했더라도 태평양의마이너스통장 개설
폭은 대서양 폭의 5배나 되기 때문에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에 자신이 변두리라고 생각했던 이탈리아 제노바의 청년은 서쪽으로 항해해서 신대륙을 발견했다. 중국이 자신의 중심이라고 생각한 데는 지리적 이유가 크다. ‘지리의 힘’의 저자 팀 마샬국민연금 수령조건
에 의하면 중국은 해안선이 둥그런 모양이어서 중원에서 같은 거리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해안선까지 장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유럽은 세로 폭이 좁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대륙과 접하고 있으므로 바다 건너에 거대한 대륙이 있다는 경험을 했다. 부동산중계수수료
그런데, 그 많은 유럽 사람 중에서 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까? 우리는 그의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콜럼버스는 유능한 지도 제작자였다. 유럽의 지도는 바다에서 배가 항해할 때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는 항상 땅뿐 아니라 바다도 생각했다. 지도를 만드는 사람은 공간을 파악하는 자이자, 자신의 위치가 어농협대출모집인
디인지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를 추구하는 자다. 즉 주제 파악이 되는 메타인지가 잘되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콜럼버스는 놀라운 의지의 사나이였다. 그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생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꿈을 지원해 줄 사람이 없자, 당시에 해양 강국이었던 포르투갈로 1480년에 이주했다. 그곳에서도 후원자를 찾지 못하자, 5년 부동산 복비 계산기
후인 1485년에 스페인으로 옮겼다. 스페인에서 7년을 고생한 후에 1492년이 되어서야 후원자를 만나 최소한의 비용을 얻어 겨우 출항하게 된 것이다. 고향을 떠난 후 12년을 고생한 다음에야 꿈꾸던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탈리아 제노바의 청년이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서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베트남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벤처기업을 세워서 네이버나 삼성전자 같은 기업을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대단한 제국이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콜럼버스의 모국인 이탈리아와 콜럼버스를 지원해 준 스페인의 공통점은 두 나라 모두 반도라는 점이다. 네덜란드와 영국도 대륙의 중심이 아닌 바다에 접한 면이 많은 작은 나라였다. 거대한 땅을 소유하지 못했던 반도나 섬의 국가들은 바다로 진출했다. 우리나라도 반도에 있다. 북한이 막고 있어서 지금은 섬나라에 가깝다. 우리는 더 넓은 공간에 진출할 생각을 해야 한다. 바다도 좋고, 북쪽으로 진출해도 좋다. 21세기에는 더 넓은 공간이 있다. 우주 공간도 있고, 인터넷 공간도 있다. 다행히 우리는 90년대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고 반도체 산업도 발전해서 인터넷 공간에서는 지금까지는 잘해 왔다. 싸이월드도 페이스북보다 5년 앞서서 만들었고, 아이팟이 나오기 전부터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던 이유도 인터넷 공간으로 빨리 진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부분에서 미국·중국·대만에 추월당했다. 관세 전쟁으로 무역 영토도 줄어들고 있다. 작은 나라일수록 우리는 더 큰 공간으로 확장해 나갈 궁리를 해야 한다. 지금의 공간에 안주하면 그 나라와 사회는 분열하고 결국 망한다. 우리의 지금 모습을 보라.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5분 칼럼'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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